
코레일 관광열차를 떠올리면 이제는 단순한 ‘교통수단’이라기보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 자체를 여행으로 만들어 주는 이동식 여행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남도 바다와 산골 협곡, 강원도 정선의 시장과 아리랑 마을을 잇는 관광열차들은, 같은 한국이라도 전혀 다른 풍경과 분위기를 보여 주기 때문에 “어떤 열차를 골라 타느냐”에 따라 여행의 느낌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중에서도 S트레인, V트레인, A트레인은 각기 다른 콘셉트로 운영되는 대표 관광열차라서, 한 번쯤은 비교해 보고 나에게 맞는 노선을 선택해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오늘은 코레일에서 운영하는 이 세 가지 관광열차를 중심으로, 남도 바다를 따라 달리는 S트레인, 백두대간 협곡 속으로 천천히 들어가는 V트레인, 정선 아리랑의 고장으로 이어지는 A트레인의 특징과 노선, 분위기, 잘 어울리는 여행 스타일을 차분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단순한 스펙 비교가 아니라, 실제로 여행을 떠난다는 마음으로 각각의 열차를 떠올려 보면서 읽어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1. S트레인
S트레인은 이름 그대로 ‘South’를 의미하는 남도 바다 관광열차로, 남해안과 전라도 남부 지역의 바다와 도시들을 천천히 이어 주는 대표적인 관광열차입니다. 코레일에서는 공식 명칭을 ‘남도해양관광열차’라고 부르고 있고, 실제 노선도 남해안의 곡선을 따라 S자 모양으로 휘어진 경로를 그리며 달리는 것이 특징입니다. 서울–여수, 부산–광주 등 남부 주요 도시들을 잇는 노선으로 알려져 있는데, 최근에는 주로 주말과 특정 시즌 위주로 운행되기 때문에, 여행을 계획할 때에는 반드시 코레일 홈페이지나 앱에서 최신 운행 일정을 먼저 확인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S트레인의 매력은, 목적지가 하나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서울에서 출발해 익산·전주·남원·순천·여수로 이어지는 구간을 타고 내려가다 보면, 전라도의 내륙 도시와 남해안의 바다가 자연스럽게 하나의 여행 루트로 연결됩니다. 부산에서 출발하는 노선이라면 창원·마산·진주·하동·순천·보성·광주송정 등 남도 남해안을 한 줄로 꿰어주며 달리게 됩니다. 덕분에 여행자는 열차 한 번만 제대로 잡아 타면, 평소에 따로따로 가야 했던 도시들을 한 번의 여행 안에 자연스럽게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열차 자체의 분위기도 일반 열차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S트레인은 객차마다 용도가 조금씩 다르게 꾸며져 있는데, 가족 단위 좌석이 넉넉한 공간, 다도를 즐길 수 있는 차실, 간단한 파티나 이벤트가 가능한 공간 등 여러 콘셉트의 객차가 한 편성 안에 섞여 있습니다. 남도 대표 차 생산지인 보성과 하동을 지나는 노선 특성을 살려, 열차 안에서 전통 다도 체험을 진행하기도 하고, 지역 특산품을 소개하는 코너나 소규모 공연·이벤트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속도를 무조건 빠르게 내기보다 일부 구간에서는 의도적으로 속도를 낮춰 바다와 섬, 강과 갯벌 풍경을 천천히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도 S트레인의 특징입니다.
외관 역시 남도 바다 여행 이미지에 맞춰 파란색과 분홍색을 조합한 컬러로 꾸며져 있습니다. 바다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남도 동백꽃을 떠올리게 하는 분홍색이 함께 쓰여, 플랫폼에 들어올 때부터 ‘지금부터는 일상 열차가 아니라 여행 열차’라는 인상을 강하게 줍니다. 열차의 앞부분은 거북선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거북이 형상으로 디자인되어 있어, 남해안과 이순신 장군의 해전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적인 요소가 되어 줍니다.
S트레인이 잘 어울리는 여행 스타일은, 아무래도 “한 번에 여러 도시를 찍고 내려가는 남도 여행”입니다. 주말 동안 여수 밤바다를 보고, 순천만 습지나 순천 국가정원에 들렀다가, 전주 한옥마을을 살짝 훑고 올라오는 코스를 상상해 보면, S트레인이 왜 매력적인지 쉽게 느껴집니다. 여행 동선을 복잡하게 짜지 않아도, 열차 자체가 이미 관광 루트를 어느 정도 만들어 주기 때문에, 역마다 내려 주변을 조금씩 둘러보고 다시 다음 역으로 넘어가는 식으로 느긋하게 여행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물론, S트레인을 일반 열차처럼 단순 이동 수단으로만 써도 됩니다. 특히 부산–광주 구간에서는 기존 무궁화호 직통 열차가 사라진 이후, S트레인이 사실상 그 역할을 겸하고 있어, 남도 도시를 오가는 지역 주민이나 여행객들에게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었습니다. 다만 이 열차의 진짜 가치는, 창밖 풍경을 감상하며 천천히 남도 바다와 도시들을 이어가는 ‘느린 여행’ 그 자체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V트레인
V트레인은 백두대간 협곡열차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름의 ‘V’는 Valley, 즉 협곡을 의미하는데, 실제로 이 열차가 달리는 구간은 강원도와 경북의 깊은 산 사이를 타고 흐르는 계곡과 낙동강 상류를 따라 이어지는 산골 구간입니다. 노선 길이는 길지 않지만, 1시간 남짓한 짧은 구간 동안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의 밀도가 굉장히 높아서, “짧고 강한” 관광열차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V트레인은 강원도 철암역과 경북 분천역 사이를 오가는 열차로, 과거 석탄 산업으로 한때 붐볐던 산골 마을들을 하나씩 잇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석탄을 실어 나르던 화물 열차가 다니던 노선이었지만, 석탄 산업이 쇠퇴하면서 한동안 조용해졌고, 이후 코레일이 이 구간의 자연환경과 철길의 정취를 살린 관광열차로 재탄생시킨 것이 바로 V트레인입니다. 높은 산과 산 사이를 파고든 철길이 계곡과 나란히 나 있고, 곳곳에 촬영 포인트로 알려진 협곡과 암벽, 낙엽 숲, 겨울설경이 이어지기 때문에 열차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재미를 느끼게 됩니다.
열차 분위기는 약간 레트로한 감성이 강합니다. 3량 편성의 비교적 짧은 열차이며, 내부는 나무 느낌의 자재와 전구 조명, 난로나 장식 요소 등 옛 기차를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로 꾸며져 있습니다. 창문은 일반 열차보다 더 크게 나 있어, 산과 강, 절벽이 훨씬 가깝게 느껴지고, 일부 계절에는 창문을 내려 계곡 바람을 그대로 느끼며 달릴 수 있는 구간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열차는 시속 약 30km 정도의 느린 속도로 달리면서 사진 찍기 좋은 포인트에서는 잠시 정차해 승객들이 창밖 풍경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해 줍니다.
V트레인이 빛을 발하는 계절은 단연 가을과 겨울입니다. 가을에는 깊은 산골 계곡 양쪽으로 단풍이 물들면서, 창밖에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겨울에는 눈이 소복이 쌓인 숲과 설경을 배경으로 달리면서 마치 눈의 협곡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실제로 겨울 시즌의 V트레인은 “백두대간 눈꽃열차”, “산타마을로 향하는 열차” 등의 별칭으로 소개될 만큼 겨울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여름이라고 해서 매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름에는 옥빛으로 빛나는 계곡 물과 짙은 녹음이 어우러져, 시원한 산골 피서지 같은 풍경을 보여 줍니다.
V트레인을 잘 활용하려면, 이 열차만 단독으로 타는 것보다 주변 여행지와 묶어 코스를 짜는 것이 좋습니다. 분천역 일대는 겨울철 산타마을로 유명하고, 인근에는 봉화·영주·태백 등 산골 도시와 연결되는 코스가 많습니다. 한겨울이라면 태백산 눈꽃산행이나 분천 산타마을 축제, 봄이나 가을이라면 낙동강 상류를 따라 걷는 둘레길, 여름에는 계곡 피서와 연계해 여행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열차가 지나가는 각 역에서 내렸다가 다시 돌아오는 방식이 가능하기 때문에, 왕복 시간과 현지 체류 시간을 미리 계산해 두면 보다 여유로운 일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V트레인은 기차 여행을 좋아하는 분들, 특히 ‘철덕’이라고 부르는 열차 애호가들에게도 인기가 많습니다. 협곡을 따라 이어진 철길 구조와 열차가 굽이굽이 산을 돌아 나가는 모습 자체가 하나의 촬영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열차 안에서 창밖 풍경만 보는 것이 아니라, 중간 지점에서 내린 뒤 산골 마을을 잠깐 걷고, 다시 다음 열차를 타고 돌아오는 식으로 하루를 채울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V트레인은 “기차를 타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께 특히 잘 어울리는 관광열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A트레인
A트레인은 정식 명칭으로는 정선 아리랑 관광열차로, 서울 청량리역에서 출발해 강원도 정선까지 이어지는 관광열차입니다. 이름의 ‘A’는 ‘Arirang’(아리랑), ‘Adventure’(모험), ‘Amazement’(경이로움)의 앞글자를 따 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정선 아리랑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 중 하나인데, 이 열차는 그 아리랑의 고장 정선으로 향하는 길을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 여행으로 풀어낸 노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청량리에서 출발한 A트레인은 중앙선과 태백선을 따라 민둥산·정선·나전·아우라지 등 강원도 내륙의 산골 역들을 하나씩 지나게 됩니다. 이 노선은 크게 보면 서울에서 정선, 그리고 아우라지까지 이어지는 일종의 테마 루트로, 중간에 민둥산 억새, 정선 5일장, 동강과 아우라지 강변 풍경 등 강원도 산골의 대표적인 여행지를 한 줄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선 5일장과 장날에 맞춰 운행되는 일정이 많아서, 열차를 타고 정선역에 내려 장터를 구경하고 지역 음식을 맛본 뒤 다시 열차를 타고 돌아오는 ‘장날 여행’이 하나의 패턴처럼 자리 잡기도 했습니다.
A트레인의 가장 큰 특징은 열차 내부의 테마 구성입니다. 총 4량 편성으로 운행되며, 각 객차는 서로 다른 콘셉트로 꾸며져 있습니다. 어떤 객차는 천장과 창문을 크게 만들어 하늘과 산 능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스카이룸 형태로 되어 있고, 또 다른 객차는 차를 마시며 창밖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티룸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객차들은 정선의 지형과 풍경을 상징하는 색(동강의 푸른빛, 산 능선의 초록과 흙빛, 정선 시골 마을의 따뜻한 색감 등)을 활용해 알록달록 꾸며져 있어, 객실마다 사진 찍을 포인트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열차 외관에서도 정선을 상징하는 요소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보랏빛 디자인인데, 이는 정선의 군화인 할미꽃(너도바람꽃 계열)을 모티브로 한 색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차체 곳곳에는 아리랑 선율을 상징하는 곡선 무늬가 들어가 있고, 문이나 창 주변에는 정선 전통 문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패턴이 더해져 있습니다. 덕분에 열차가 역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아, 지금부터는 정선 아리랑을 향한 여행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기대감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A트레인은 단순히 풍경만 보여주는 열차가 아니라, 열차 안에서 작은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구간과 시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아리랑 노래 공연, 간단한 마술쇼, 퀴즈 이벤트, 이야기 해설 등 승무원과 진행자들이 승객들과 소통하며 시간을 채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탔다면 열차 안에서 지루해할 틈이 적고, 어른들도 강원도 산골을 배경으로 아리랑을 직접 듣는 순간에는 여행이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다만 A트레인을 계획하실 때 한 가지 꼭 체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2024년 2월, 민둥산역과 별어곡역 사이 구간에서 낙석 사고로 선로가 손상되면서, 민둥산–아우라지 사이 일부 구간 운행이 장기간 중단된 상태라는 소식이 있었고, 당시부터 해당 구간 운행은 무기한 중지된 것으로 안내된 바 있습니다. 이후 복구·운행 상황은 시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A트레인을 실제로 이용하시려면 코레일 공식 홈페이지나 공지사항에서 가장 최신 운행 정보를 반드시 확인하시는 것이 안전합니다. 특정 구간만 단축 운행을 하거나, 대체 교통수단과 연계한 상품으로 변경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트레인은 “열차 안에서부터 시작되는 정선 여행”이라는 콘셉트만으로도 여전히 매력적인 노선입니다. 서울에서 출발해 창밖으로 점점 도시 풍경이 사라지고 산과 강, 터널과 다리들이 깊어지는 변화를 천천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지고, 정선역이나 민둥산역에 내려 장터와 산책로를 걷다 보면 “아, 이래서 강원도 산골 여행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게 됩니다. 정선 레일바이크나 집와이어, 민둥산 억새산행 등과 함께 묶으면 하루나 1박 2일 일정으로도 충분히 알찬 여행이 됩니다.
정리 및 비교
세 가지 열차를 이렇게 나란히 놓고 보면, 같은 코레일 관광열차라도 지향하는 여행 스타일이 꽤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남도 바다와 도시를 한 번에 훑고 싶다면 S트레인이 잘 어울리고, 깊은 산골 협곡과 계곡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면 V트레인이 제격입니다. 강원도 정선이라는 한 지역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문화와 시장, 사람들의 삶까지 느껴 보고 싶다면 A트레인이 좋은 선택이 됩니다.
실제로 여행을 계획하실 때에는, 우선 “바다 vs 산 vs 산골 마을·시장” 중 어디에 더 끌리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신 뒤, 계절과 출발지, 동행 구성까지 함께 고려하시면 좋습니다. 서울 출발 기준으로는 A트레인이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좋고, 남부나 전라도·경상도 일대에서 출발한다면 S트레인이나 V트레인을 중심으로 일정과 연계 도시를 고르는 방식이 자연스럽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는, 관광열차는 일반 KTX나 무궁화호와 달리 시즌에 따라 운행 요일과 편수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주말·성수기 위주로 운행되는 경우가 많으니, 여행 날짜를 먼저 정해두고 원하는 열차가 그날 실제로 운행하는지, 출·도착 시간이 어떻게 되는지를 코레일 공식 홈페이지와 앱에서 반드시 다시 확인하신 뒤, 숙소와 현지 동선을 맞추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코레일 관광열차는 빠르게 목적지만 찍고 지나는 여행이 아니라, “이동하는 시간 자체를 여행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선택입니다. 창밖 풍경을 보고, 열차 안의 분위기를 느끼고, 역마다 잠시 내려 동네를 한 바퀴 걸어보고, 다시 열차에 올라 다음 풍경을 기다리는 느린 리듬을 좋아하신다면 S트레인, V트레인, A트레인 중 어느 것 하나도 후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